국민일보 미션라이프


[고고학으로 읽는 성서-(1) 가나안 땅의 사람들] 암몬 사람들 ②

2012/12/27 21:19


암몬 등은 섬기던 神 ‘몰렉’에게 사람을 희생제물로 바쳐

솔로몬은 이집트 왕의 딸을 비롯하여 수많은 이방 여인들과 혼인을 하였다. 물론 한 나라의 왕으로서 그는 국제 혼인을 통해 정치적 연맹을 꾀했으리라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러나 그의 잘못은 혼인에 있는 것이 아니다. 다윗의 아들인 그는 분명 여호와가 무엇에 진노하시는 줄 알고 있었을 것이다. 성서는 이미 이스라엘 사람들이 가나안 땅에 정착하는 과정에서 바알과 아스다롯을 비롯하여, 아람, 모압, 암몬 그리고 블레셋 사람들이 섬기는 신들을 섬겼고 여호와께서 이에 얼마나 진노하셨는지를 말하고 있다. 결국 이스라엘 자손들은 블레셋과 암몬 자손의 손에 맡겨져(삿 10:6∼7) 고통의 나날을 보내야만 했다. 솔로몬의 죄악은 여기에 있었다. 그와 혼인한 이방 여인들은 분명 그들이 고향에서 섬기던 신들과 제사장들 그리고 종교적 관습을 가지고 왔다. 솔로몬은 그 신들을 위해 신전을 지어주고 여인들과 함께 이 신들을 섬겼다(왕상 11:5, 7, 33).

암몬의 신 몰렉(밀곰, 몰록)을 섬기다.

암몬의 여인이 섬기던 신은 밀곰(왕상 11:5, 33; 왕하 23:13) 혹은 몰록(왕상 11:7; 왕하 23:10)이라 불리고 있다. 이 신의 이름은 때로는 몰렉이라고도 불렸다(레 18:21; 20:2∼5; 사 57∼9; 렘 32:35). 여기서 우리는 통칭으로 몰렉이라고 부르고자 한다. 몰렉의 어원은 셈어에서 왕이라는 의미의 mlk와 같은 어원을 가지고 있다. 몰렉은 바알과 유사한 신으로 암몬뿐만 아니라 베니게, 그리고 베니게의 식민지였던 북아프리카까지 이르는 영향력 있었던 신으로 보인다. 성서는 몰렉을 섬기는 것뿐만 아니라 몰렉을 섬기는 종교적 관습에 문제가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레위기에 의하면 몰렉의 제사에는 아이들이 희생 제물로 바쳐졌다(레 18:21). 몰렉에게 자녀를 주는 자는 죽음으로 그 대가를 치러야 했다.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또 이르라 그가 이스라엘 자손이든지 이스라엘에 거류하는 거류민이든지 그의 자식을 몰렉에게 주면 반드시 죽이되 그 지방 사람이 돌로 칠 것이요 나도 그 사람에게 진노하여 그를 그의 백성 중에서 끊으리니 이는 그가 그의 자식을 몰렉에게 주어서 내 성소를 더럽히고 내 성호를 욕되게 하였음이라 그가 그의 자식을 몰렉에게 주는 것을 그 지방 사람이 못 본 체하고 그를 죽이지 아니하면 내가 그 사람과 그의 권속에게 진노하여 그와 그를 본받아 몰렉을 음란하게 섬기는 모든 사람을 그들의 백성 중에서 끊으리라.”(레 20:2∼5)

이렇듯 극명한 죄악임에도 불구하고 솔로몬은 몰렉을 위한 신전을 짓고 그곳에서 경배했으며 결국 이스라엘 자손은 “힌놈의 아들의 골짜기에 바알의 산당을 건축하였고 자기들의 아들들과 딸들을 몰렉 앞으로 지나가게 하였다.”(렘 32:35) 예루살렘은 동쪽과 남쪽에 골짜기가 있어 마치 언덕의 형태에 위치한 도시였다. 그중 동남쪽의 골짜기를 힌놈의 아들의 골짜기라 불렀다. 예레미야 7장 32절에서 죽임의 골짜기가 되리라고 말하고 있는 것처럼 이곳에는 구약시대를 비롯하여 신약시대까지의 수많은 무덤들이 발견된 바 있다. 특별히 이 골짜기에는 몰렉에게 제사지내는 도벳이라 불리는 장소가 있었다(렘 7:31∼32). 도벳의 어원에 대해서 ‘타다’라는 뜻을 가진 ‘taph’로 보는 견해도 있지만 히브리어의 ‘toph’가 북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어 아이들이 희생으로 드려질 때 들리는 울음소리를 들리지 않게 하기 위해 북을 쳤던 것에서 기인한다고 보는 학자들이 많다. 힌놈의 골짜기의 도벳은 유다 왕 요시야에 의해 파괴되었다. 그는 어떤 사람도 몰렉에게 자기의 자녀를 불로 지나가지 못하게 하였다(왕하 23:10). 도벳의 파괴는 이스라엘이 멸망하는 모습의 예가 될 정도로 산산이 부서졌던 것으로 보인다. “예루살렘 집들과 유다 왕들의 집들이 그 집 위에서 하늘의 만상에 분향하고 다른 신들에게 전제를 부음으로 더러워졌은즉 도벳 땅처럼 되리라.”(렘 19:13)

카르타고의 도벳

요시야와 히스기야의 종교개혁 때문인지 더 이상 힌놈의 골짜기에서 도벳의 예가 발견된 바는 없다. 암만에서는 주전 1400∼1250년께 사용된 것으로 보이는 신전이 하나 발견되었는데 사람이 희생 제물로 사용된 흔적이 있다. 그러나 지난 호에서 언급한 것처럼 암만의 미흡한 고고학적 발전은 아직까지 이 수수께끼의 신과 그 관습을 우리에게 전해주지 못하고 있다. 대표적인 도벳의 모습과 자녀를 희생 제물로 바치는 종교적 관습은 북아프리카 카르타고에서 발견되었다. 카르타고는 현재 북아프리카 튀니지로 주전 3000년께부터 이미 고대 유적이 발견되기도 했지만 주전 9세기께부터 베니게의 식민지로 가나안적인 문화가 발견되는 것으로 유명하다. 카르타고는 주전 146년 로마에 의해 멸망하였다. 1920년부터 1970년까지 행해진 카르타고에서의 발굴은 주전 8세기부터 로마에 의해 파괴될 때까지 사용된 것으로 보이는 공동묘지를 세상에 드러냈는데 이는 주전 4∼2세기께 그리스의 문헌에 등장하는 카르타고의 종교적 관습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어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카르타고의 대표적인 신은 베니게를 고향으로 하고 있는 바알 함몬이라는 신과 그의 배우자 타닛이라는 여신이었다. 바알 함몬은 바알의 또 다른 이름으로 보며 타닛은 베니게의 사렙다 지역에서 발견되는 여신으로 아쉬타르테나 아낫 같은 베니게의 풍요의 여신들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본다. 바알 함몬은 초승달이 태양을 덮고 있는 모습이 상징이며 타닛은 둥근 얼굴과 양쪽으로 쭉 뻗은 팔 그리고 삼각형 형태로 하체가 표현된 마치 인형이나 어린아이의 모습을 하고 있다. 카르타고에서 발견된 공동묘지의 비석들에는 이러한 바알과 타닛의 상징들이 조각되어 무덤의 주인이 이 신들에게 헌물되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무덤에는 영아의 시신을 화장하여 담은 작고 붉은 항아리들이 묻혀 있어 아이들이 희생 제물로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리스의 유명한 철학자이자 수학자였던 플라토(424/423 BC∼348/347 BC)의 기록에 의하면 카르타고에는 실제로 아이들을 희생 제물로 바치는 제사가 있었다고 한다. 그는 제단 앞에는 두 팔을 벌린 그리스의 신 크로누스의 청동상이 있었다고 말하고 있다. 학자들은 크로누스가 초승달 모양의 낫이 상징인 것과 제우스 이전의 서열 높은 신이었던 것을 감안할 때 바알 함몬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가나안의 바알처럼 뿔 달린 청동상의 모습이었을 것이라고 추측한다. 또 다른 그리스 철학자들에 의하면 카르타고의 귀족들은 자신들의 자녀 외에도 희생 제물로 바칠 아이들을 따로 키웠다고까지 말하고 있다. 전쟁과 같은 위급한 시기에 이 귀족들이 키운 200명의 아이들이 바쳐지기도 하였으며 제사 동안 울음소리가 들리지 않게 하기 위해 실제로 북이 연주되었다고 한다.

◇공동 집필

임미영 박사


<평촌이레교회 협동목사 , 서울신학대학교, 한신대학교, 장신대학교 강사>

김진산 박사

<새사람교회 공동목회, 서울신학대학교 호서대학교 건국대학교 강사>

트위터
페이스북
공감
카카오톡

많이 본 뉴스

전체뉴스 기사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