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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은 인간의 바람대로 쓰이지 않았다

2017/09/14 00:03

‘성경은 누구의 것일까(Whose bible is it)?’ 하나님일까, 성경의 저자들일까, 성경을 읽는 독자일까. 다소 도발적으로 들리는 질문을 제목으로 삼은 이 책은, 지난 2000년에 걸친 성경의 역사를 다룬다. 유대교 경전으로 시작해 인류의 보편적 진리로 자리매김하기까지 다양한 성경이 존재했고, 시대마다 다르게 읽혔던 과정을 시대 순서에 따라 일목요연하게 살펴본다.

‘다양한 성경’이라는 표현 자체가 거슬리는 독자도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21세기 오늘날 유대교인과 가톨릭 신자, 개신교 신자는 저마다 다른 성경을 쓴다. 개신교 안에서도 나라와 언어, 교파에 따라 다른 얼굴로 존재하는 성경들이 있다.

저자는 성경을 잘 보존하고 전파하기 위해 인간이 기울인 노력의 과정을 꼼꼼히 추적한다. 그 과정에서 인간의 원래 의도와는 다르게 사용됐던 성경 역사의 아이러니를 예리하게 포착해낸다.

첫 번째 사건은 유대인들이 히브리어 타낙(구약)을 그 시대 통용되던 그리스어로 번역해 ‘70인역’을 발간한 것이다. 지중해 지역 곳곳에 흩어져 민족의 언어 히브리어를 잊고 살았던 유대인 디아스포라를 위해 번역한 이 책은 정반대로 기독교라는 신흥 종교의 부흥을 불러왔다.

“얼마 되지 않아 유대인들은 성서를 그리스어로 번역한 것을 후회했다. 그리스도교인들이 이사야서의 70인역 본문을 바탕으로 예수의 처녀 출산을 주장하는 등 번역된 성서를 활용해 다양한 교리를 새롭게 만들었기 때문이다.”(113쪽)

중세를 거쳐, 성경에 대한 연구가 활짝 꽃을 피웠던 종교개혁 과정에서도 역사의 아이러니는 반복된다. 마르틴 루터는 95개조 반박문에 “우리 주님이자 선생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회개하여라(마 4:17)’고 말씀하셨을 때 그분께서는 믿는 사람들의 삶 전체가 회개되기를 바라셨다”고 적었다.

당시 로마 가톨릭교회에서 사용하던 라틴어로 된 불가타 성경의 ‘고해성사를 하라’ 대신 그리스어 원문 성경에 따라 ‘회개하라’고 쓴 것이다. 루터는 또 독일어로 성경을 번역하고 다양한 주해서도 출판했다. 성경 보급을 바탕으로 ‘오직 성경으로’를 외쳤다. 그때부터 성경의 유일한 권위 인정 여하에 따라 개신교와 로마 가톨릭으로 갈라지게 됐다.

당시 루터의 성경 번역과 출판을 ‘독일사의 신화적 순간’이라고 부르며 환호했던 동시대인들은 이로 인한 부작용을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역설적으로 성경 해석의 자유가 주어지자 해석을 둘러싼 이견으로 교회의 분열이 가속화됐다. 루터 사망 이후 유럽에선 연이어 종교전쟁이 일어났고, 유럽 사회는 황폐화되면서 영구 분열의 길로 들어섰다. “이때 서로에게 겨눈 무기는 석궁과 대포뿐만이 아니었다. 분열된 그리스도교인들은 성서 구절을 근거 삼아 서로 파문하기를 일삼았다.”(263쪽)

책 전체가 흥미롭지만, 중세 이후 뒷부분이 특히 매력적이다. 루터의 종교개혁 과정이 성경의 역사에서 어떤 의미를 차지하는지, 또 종교개혁 이후 기독교 전체 역사가 어떻게 달라졌는지를 제대로 보여주고 있다. 번역자들은 유대교와 가톨릭, 개신교 전체를 포괄하는 내용에 맞춰 공동번역개정판을 썼다. 기존의 개신교 독자들에겐 용어들이 생경하게 와 닿을 수 있다. 그럼에도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아 꼭 한번 읽어볼 만한 책이다.

저자 야로슬라프 펠리칸은 미국 예일대 석좌교수를 지낸 역사신학자다. 영문판 루터 선집 55권의 편집자이자, 5권짜리 ‘그리스도교 전통’의 저자로 유명하다. 개신교뿐 아니라 유대교와 동방정교회에 이르기까지 해박한 기독교 역사 지식에 깊이 있는 통찰을 더한 저작으로 미국 신학계에 큰 영향을 끼쳤다.

그가 던진 질문의 답은 무얼까. 그는 “궁극적인 의미에서 누구든 성서가 자신의 것이라 주장하는 것은 주제넘은 일”이라고 말한다. 성경의 소유권을 주장하는 인간들이 나타날 때마다 하나님은 성경에 대한 당신의 주권을 드러내셨기 때문이다. 결국 성경은 언제나 앞으로도 하나님의 책이다.

김나래 기자 nara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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